'야당 독재'에 고삐 잡힌 한국 민주주의 [노원명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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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석의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시작되기 전에, 그러니까 자신들이 아직 여당인 동안에 기어코 '검수완박'을 해치울 모양이다. 일단 새 정부가 출범하면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가능해지므로 검수완박처럼 스스로 법을 만들어서 하는 횡포는 견제될 것이다. 그러나 172석 야당은 입법을 통해 행해져야 할 모든 국가 행위를 '사보타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법 이전에 양식에 의해 규율되는 집단이라면 그런 능력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에는 그런 양식이 있는가.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학 교과서에서도 보기 힘든 '야당 독재'의 길목에 서 있다.
검수완박은 한마디로 더불어민주당의 '과거세탁법'이다. 그들이 정권을 갖고서 저지른 불법과 월권, 배임, 국기문란, 이적행위를 검찰이 들여다볼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초 전임 대통령과 전직 국정원장 3명, 전직 국방장관과 문화부장관 등등··· 무수한 전 정권 인사들을 갖은 죄목으로 구속시켰다. 검찰을 통해서였다. 검수완박을 그때 했더라면 진정성은 인정받았을 것이다. 잘 부려먹던 검찰이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엇 나가자 그때서야 잊고 있었다는 듯 검찰개혁을 들고 나왔다. 윤석열 검찰에 대한 분노가 커질수록 생각도 극단으로 흘렀다. 그 귀결점이 검수완박이다.
대선에 미칠 후폭풍을 걱정해 법안만 제출해놓고 약 1년을 눈치 보더니 대선에서 지고 나자 죽고 사는 문제가 됐다. 1년전에는 검찰이 밉다는 추상적, 혹시 정권을 내줄 경우에 대비한 예비적 동기가 뒤섞여 있었다면 지금은 오직 '칼 피하자'는 현실적 생각뿐이다. 술래잡기 놀이를 하던 유치원생이 자기가 술래될 차례가 되자 '야, 다른거 하자'고 땡깡 부리는 것하고 똑같다. 자기 큰 몸집만 믿고서 말이다.
자기 보신을 위해 법을 우격다짐으로 통과시키는 것. 그건 독재다. 상대의 국정운영에 필요한 모든 입법을 봉쇄하는 것. 그건 준독재다. 더불어민주당은 지금 독재를 하고 있고 장차 준독재 야당이 될 모든 소질을 구비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가 야당 독재에 고삐 잡힌 소처럼 비칠대지 않을까 걱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어떤 당인가. 그 당은 유서깊은 한국 정통 진보세력의 DNA를 이어받았다. 먼 조상으로는 해방후 김성수 조병옥 등이 주축이 된 한민당, 가까운 조상으로는 김대중의 평민당이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주로 야당 역할을 할때가 많았지만 이념적으로 치우치지 않은 '포괄정당'을 지향해 왔다. 그 당의 리더들은 이념적으로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균형잡힌 인물들이 많았다. 엄혹했던 시절에 한국 민주주의의 연약한 뿌리를 보듬고 스스로도 자존심을 지켜냈던 사람들이다.
언제부터인가 그 위대한 당에 눈에 독기 서리고 혀에 가시돋힌 인물들이 늘어났다. 그 중에서 가장 독한 눈빛을 가진 사람들이 지도부를 장악했다. 그들은 상대편 자살골 덕분에 엉겁결에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5년 동안 본색을 드러냈는데 선배들과 많이 달랐다. 표독하면서 무능하고 동시에 탐욕스러우면서 뻔뻔했다. 나라에 위선과 부패의 악취가 진동했다. 후학이 용렬하다는 얘기는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당명에 민주를 내건 당이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미운 털이 박히면 그걸로 끝이었다. 가장 큰 미운털이 박힌 상대가 검찰이었다.
그 위대했던 진보정당이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검수완박으로 자기가 똥 싼 흔적을 은폐하려 한다. 검찰이라는 눈은 찔러버린다손 냄새는 어쩌란 말인가. 어쩌다 인촌과 후광의 당이 부패한 586 기득세력, 눈빛 차가운 자들의 서클이 되어 버렸나. 어떻게 그 민주당이 '야당 독재'로 이 나라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기에 이르렀나.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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