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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자산' 엔화의 추락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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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달러와 스위스 프랑과 함께 안전자산의 대명사이던 엔화가 몰락하는 걸까.

“위기 때면 엔화 가치는 오른다”는 외환시장의 공식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원자재 가격 급등 등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데도, 엔화 값은 자유낙하 중이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엔화를 샀다가는 오히려 손해 볼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안전자산 엔화값은 자유낙하 중.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22일 오후 4시 기준 외환시장에서 엔화 값은 달러당 120.4엔으로 떨어졌다(환율 상승). 2016년 2월 1일(달러당 120.98엔) 이후 6년 1개월 만에 가장 낮다.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24일 이후 엔화 가치는 4.7%가량 하락했다. 올해 강세를 이어가는 달러와 보합세인 중국 위안화와는 사뭇 다르다.

과거 실물 경제나 금융 시장의 위험이 커질 때 일본 엔화는 미국 달러와 함께 국제 자금이 폭풍을 피하는 주요 피난처였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 엔화 값은 4개월 만에 달러당 110엔대에서 80엔대로 뛰었다(환율 하락).

달러 오르고, 엔은 내리고.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일본 경제를 구하려 펼친 ‘아베노믹스(아베+이코노믹스)’의 세 개의 화살 중 하나가 ‘엔저(低)’다. 아베노믹스는 ‘금융 완화→엔화 약세(엔저)→수출 증가→기업이익 증가→주가 상승→투자 증가→임금 상승→소비 증가’란 선순환 시나리오를 기대했다.

이를 위해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2013년 3월 취임 직후부터 초저금리 등으로 엔저를 유도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엔저로 기업 이익이 늘고, 늘어난 이익을 기업이 일본경제에 재투자하는 구조를 기대했지만, 기업은 투자를 늘리지 않았고, 대부분 국외 투자를 늘리면서 일본 경제의 기초체력이 약해졌다”고 말했다.

오랜 초저금리로 미국 등과의 시장 금리 차가 확대되며 자금 유출도 이어졌다.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2%대다. 반면 일본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0%대다. 엔화 수요가 줄어드는 요인이다. 엔화 가치 하락은 뒤따를 수밖에 없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경상수지 적자 등 일본 경제 체력 약화도 원인 중 하나다. 일본의 경상수지는 지난해 12월(-3708억엔)과 지난 1월(-1조1887억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의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경상수지 적자가 나면 일본 기업은 대금 지급을 위해 엔화를 팔아 달러를 사야 한다. 엔화 가치는 더 떨어진다. 노지 마코토 SMBC닛코증권 수석 전략가는 “배럴당 국제유가가 110~120달러 수준이면 엔화 가치가 달러당 125~130엔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일본 경제에 대한 투자자의 회의적인 시각도 엔화 약세로 이어진다. 윤덕룡 한국개발연구원(KDI) 초빙연구위원은 “노동력이 가파르게 감소하는데, 이를 대체할 생산성 혁신이나 구조 개혁이 이뤄지지 못했다”며 “중장기적으로 통화 가치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일본 기업의 주가가 오른다는 게 상식처럼 통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엔화 가치가 달러 대비 4% 넘게 하락했지만, 닛케이 지수 상승률은 2.93%에 그쳤다.

‘엔저의 덫’에 갇힌 모양새지만 분위기가 지금과 많이 달라지진 않을 전망이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58%로, 베네수엘라에 이어 세계 2위다. 금리를 올리면 정부의 이자 부담이 많이 늘어난다. 저금리 기조를 이어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엔화 하락 압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수출국인 한국과 일본은 결국 기업의 경쟁력이 자국 통화 가치나 경제력에 중요한 요인”이라며 “일본 경제와 기업의 잠재성장률이 떨어진 원인이 고령화인 만큼 일본만큼 빠르게 인구 감소가 진행 중인 한국의 경우에도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연주·윤상언 기자 kim.yeo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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