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과 두려움 사이, 위험감각 흐려진 투자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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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신순규의 월가에서 온 편지]
물가·금리·불안 3高 속에서 기업가치 제대로 판단하는 법
아내는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한다. 아내가 아프면 나도 다른 남편들처럼 의사에게 가자고 하는데, 아내는 항상 일단 싫다고 하고 본다. 주사 맞는 걸 무서워해서 그런다면 차라리 귀엽기라도 하지. 아내는 자신이 심각한 병에 걸렸을까 봐 싫다고 하는 거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심각한 병에 걸렸다면 더 빨리 진단받고 치료나 수술을 하는 게 맞지. 하지만 아내의 불안한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부부가 서로 닮아가는 건지, 1년 전부터는 나도 아내와 비슷한 생각을 해 왔다. 아무래도 의사에게 가야 할 것 같은데, 병원 예약을 차일피일 미뤘다. 괜찮을 거라며 스스로 위로해 봐도, 내가 짐작하는 병이 맞는다면 너무 충격적이지 않은가. 그러니 차라리 병원 가기를 미룰 수밖에.
일러스트=안병현주로 경마를 주제로 소설을 썼던 영국 작가 딕 프랜시스. 나는 그의 소설을 자주 읽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집안 배경과 상관없이 똑똑하며 인생의 큰 시련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또 그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닥치는 부당한 사건들을 강인하게 해결한다. 그중 한 명이 ‘시드 핼리’다. 프랜시스가 쓴 다섯 권의 소설에 반복해서 나오는 주인공으로, 직업은 경마 기수다. 그는 적의 난폭한 공격으로 왼손을 잃고 만다. 기수로 일할 수 없게 된 핼리는 탐정으로 변신한다. 그의 스토리에는 항상 악한 인물들이 나오는데, 그 악인들은 핼리의 오른손마저 자르겠다고 위협하며 그를 방해한다.
‘두 손이 전부 없어진다면….’ 핼리가 자신의 미래를 비관하며 쏟아내는 온 감정을 흡수하며 내가 두려워했던 것이 있다. 바로 청각마저 잃는 것이다. 나는 녹내장과 망막박리로 아홉 살 때 시력을 잃었다. 아주 밝은 빛도 보지 못하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그래서 나에게 청각은 더 중요한 감각이다. 점자를 읽긴 하지만 내게 전달되는 정보는 거의 다 귀를 통해서 전해진다. 그래서 청각이 쇠약해진다는 건 다른 이들과의 소통에 필요한 줄이 끊어진다는 것과 같다. 시각 손실로 오래전에 얇아져버린 그 줄이 닳아서 결국 끊어질 수도 있으니까. 5000달러짜리 보청기를 착용하면서도, 가족이나 지인들과 자유롭게 소통하지 못해 고립된 생활을 하는 분을 알고 있다. 물론 그는 앞을 볼 수 있는 정안(正眼)자다.
사람들의 말이 희미해지기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 잘 모르겠다. 특히 재택근무를 시작한 2년 전부터는 가족을 제외하면, 거의 다 화상회의나 전화 통화로 대화를 해 왔다. 그런데 지인들과 식당에 가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나와 조금 떨어진 이들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내가 어떤 질문을 하면, 옆에 앉은 아내가 말한다. “아니, 좀 전에 말한 걸 왜 또 물어 봐?” 얼마 동안은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혹은 입에 음식을 물고 있어서 내가 듣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는 상태가 심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뉴저지 식당에서 마스크 쓰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젠 어디서나 마스크 쓰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결국 나는 내 대학 동창인 주치의에게 털어놓았고, 그의 권고에 따라 얼마 전 전문의에게 찾아갔다. 의사는 이 정도 청각 손실은 ‘가벼움’에서 ‘중증’쯤 된다고 진단했다. 특히 높은 음의 소리를 듣는 감각이 손상되었다고 말해주었다. 왜 여성분들의 말이 더 희미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의사는 내 아이폰을 달라고 하며 휴대폰 세팅을 다시 해줬다. 적어도 소리 제한을 85dB에서 80dB으로 줄이라고도 말해주었다. 아직 보청기를 쓸 때는 아니지만 큰 소리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라는 말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아이폰과 컴퓨터 스피커 볼륨을 생각날 때마다 줄이려고 애쓰고 있다.
기업의 가치를 판단하는 감각도 마찬가지다. 너무 큰 자극에 자주 노출되다 보면 흐려질 수 있다. 우리 자산운용 팀은 엄격한 퀀트(통계에 기반한 분석) 모델을 사용해서 증권의 가치를 계산한다. 그러나 이것도 애널리스트들이 판단하고 예측하는 변수에 따라 가치를 계산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특정 기업의 전반적인 주가가 높을 때 애널리스트의 판단이 과도하게 낙관적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랫동안 큰 소리에 노출된 사람이 볼륨을 계속 올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사업의 추세나 경제 흐름을 전체적으로 보는 능력이 중요하다.
역사적인 수준의 인플레이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올해만 2% 넘게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경고. 최근 여러 상황에도 주가는 크게 하락하지 않았다. 욕심과 두려움 사이에서 움직이는 투자자들. 이들은 언제까지 욕심에 머물러 있을 수 있을까. 큰일이 일어난 후에는 손실을 무릅쓰고 자산을 매각하게 될 텐데. 몹시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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